그랜드슬램 양분한 두 신성

테니스 그랜드슬램은 세계랭킹 1위 야닉 시너(이탈리아)와 3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나눠 가졌다. 9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시너는 12위 테일러 프리츠(미국)를 3-0(6-3, 6-4, 7-5)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시너는 1월 호주오픈 우승에 이어 시즌 두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은 알카라스가 차지했고, 이번 US오픈에서 시너가 정상에 오르며 ‘투톱’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빅3 시대의 마침표, 세대교체 본격화

지난 20년간 세계 남자 테니스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라파엘 나달(스페인), 로저 페더러(스위스)로 대표되는 ‘빅3’가 독주했다. 이들의 벽을 넘는 선수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으나, 2024년 그랜드슬램 우승자 명단에서는 모두 제외됐다. 조코비치는 US오픈 3라운드에서 탈락했고, 나달과 페더러 역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모두가 그랜드슬램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페더러는 이미 은퇴했고, 나달도 은퇴 수순에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 2000년대생 돌풍

야닉 시너(2001년생)와 카를로스 알카라스(2003년생)는 2000년대생으로,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참고로 알카라스가 태어난 해인 2003년에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 이후로 2023년까지 치러진 75회의 그랜드슬램 중 빅3가 아닌 선수가 우승한 경우는 단 11회에 그쳤다. 역대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는 조코비치 24회, 나달 22회, 페더러 20회로, 그들의 지배력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 시너와 알카라스가 새로운 시대를 열며, 조코비치도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자존심을 지키며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진기록과 논란, 시너의 새로운 역사

시너는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에 이어 한 시즌에 두 번째 타이틀을 추가했다. 이는 1977년 기예르모 빌라스(아르헨티나) 이후 47년 만의 기록이며, US오픈에서 우승한 최초의 이탈리아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너는 금지약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월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제테니스청렴기구(ITIA)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해 징계는 내리지 않았다. 시너는 상처 치료를 위해 사용한 연고에 금지약물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해명했고, ITIA는 단순 실수로 결론 내렸다.

감동의 순간, 시너의 소감과 헌신

결승전에서 시너는 안정적으로 1, 2세트를 따낸 뒤, 3세트에서 잠시 흔들렸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경기 후 시너는 “이번 우승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나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이런 순간을 위해 훈련해왔다. 특히 이 대회에서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그는 이번 우승을 건강이 좋지 않은 이모에게 바쳤다며, “이모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소중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모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진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