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트코인과 금 ETF에서 눈에 띄게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가격이 3%대 약세를 보이고 달러 지수나 금 선물 등 여러 지표가 엇갈리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른바 ‘가치 훼손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사실상 끝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가 막대한 빚을 지면서도 지출을 통제할 생각은 안 하니 법정화폐의 타락을 피해 금, 은, 비트코인 같은 대체 자산으로 도피하자는 게 이 트레이드의 핵심 논리였다. 하지만 이제 투자자들의 시선이 이동하면서, 이 거시적 공포 마케팅은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철 지난 화두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단순한 도피성 자금 이동이 둔화되는 와중에 이더리움의 행보는 상당히 묘한 이질감을 자아낸다. 당장 가격표만 보면 꽤나 처참하다. 작년 2025년 8월 고점 대비 무려 57%나 폭락해 2,100달러 선을 힘겹게 맴돌고 있고, 같은 기간 비트코인 대비 이더리움 가격 비율(ETH/BTC)도 37%나 주저앉았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실제 장부를 들여다보면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이더리움 기준으로 환산한 총 예치금(TVL)이나 실제 온체인 트랜잭션 수는 오히려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며 지칠 줄 모르고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애널리스트 제프 켄드릭(Geoff Kendrick)은 이 기이한 괴리 현상을 두고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당시의 아마존을 떠올렸다. 당시 제프 베이조스가 “주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회사 내부의 모든 지표는 완벽하게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했던 뼈있는 통찰이 지금의 이더리움 네트워크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거다. 펀더멘털은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는데 가격만 그에 뒤처진 상태라, 결국 내부 지표에 맞춰 가격이 극적인 ‘키맞추기’를 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켄드릭은 이런 내실을 근거로 이더리움이 2026년 말 4,000달러, 2030년 말에는 40,0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장기 강세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이더리움은 비트코인 대비 비율에서 2021년 전고점이었던 0.08 부근을 너끈히 탈환하게 된다.

이 묵직한 베팅의 기저에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된 실물 연계 자산(RWA)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성장 엔진이 자리 잡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2028년 말까지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지금보다 6배 팽창하고, 비(非)스테이블코인 RWA 시장은 무려 50배나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서 진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더리움이 이 두 거대 파이에서 이미 50~65%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두 섹터는 네트워크 전체 예치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더리움 생태계의 뼈대를 지탱하고 있다.

결국 맹목적으로 화폐 가치 하락에 베팅하던 1차원적인 트레이딩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단순한 내러티브가 아닌, 실제 가치를 창출하고 자본이 순환하는 인프라만이 남을 것이다. 이더리움의 장부상 수치와 차트 위 가격 사이의 지독한 엇박자가 언제쯤 전환점을 맞이할지 정확한 타이밍을 재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장의 변덕스러운 외면 속에서도 생태계 내부의 태엽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감기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