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추가시간에 또 한 번 주어진 추가시간, 마지막 기회에서 올라온 프리킥을 벤피카의 수문장 아나톨리 트루빈이 다이빙 헤더로 꽂아 넣었다. 말 그대로 기적 같은 극장골이었다. 29일(한국시각) 포르투갈 리스본의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서 열린 2025~2026 UEFA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 최종 8차전은 이 한 방으로 희비가 완벽하게 엇갈렸다. 조제 모리뉴 감독이 이끄는 벤피카는 레알 마드리드를 4-2로 격침시켰고, 모리뉴는 이 극적인 승리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며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을 열광시킨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골”이라고 친정팀을 꺾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경기 결과로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대진표의 지형도는 크게 요동쳤다. 벤피카는 마르세유와 나란히 승점 9점(3승 5패)을 기록했지만 득실차에서 딱 한 골을 앞서며 24위로 16강 플레이오프행 막차에 탑승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9위(5승 3패, 승점 15)로 미끄러지며 1~8위에게 주어지는 16강 직행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참고로 아스널이 8전 전승 1위로 리그 페이즈를 마쳤고,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 토트넘, FC바르셀로나, 첼시, 스포르팅, 맨체스터 시티가 톱 8에 안착했다. 이강인의 파리 생제르맹은 11위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팽팽했던 화력전, 스스로 무너진 마드리드

전반 30분 킬리안 음바페가 선제골을 터뜨릴 때만 해도 레알 마드리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벤피카의 반격은 매서웠다. 전반 36분 안드레아스 시엘데루프가 동점골을 뽑아냈고, 후반 5분 방겔리스 파블리디스가 승부를 뒤집었다. 기세를 탄 벤피카는 후반 9분 시엘데루프의 멀티골로 격차를 벌렸다. 음바페가 불과 4분 뒤 만회골을 넣으며 맹추격에 나섰지만, 승점과 득실차가 절실했던 총력전 양상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후반 추가시간 2분 라울 아센시오에 이어, 추가시간 7분 호드리구마저 경고 누적으로 연달아 퇴장당하며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결국 수적 열세라는 치명적인 빈틈은 경기 종료 직전 골키퍼 트루빈의 쐐기골로 이어졌다.

수비진의 과포화, 꼬여버린 레프트백 잔혹사

레알 마드리드의 뼈아픈 챔스 부진은 단순히 불운이나 퇴장 변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재 팀 내부에 감도는 묘한 어수선함, 특히 수비진의 과포화와 포지션 중복 문제가 팀 밸런스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마르크 쿠쿠렐라가 첼시를 떠나 마드리드에 합류하면서 왼쪽 풀백 포지션은 그야말로 심각한 교통체증 상태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모리뉴가 벤피카에서 그토록 원했던 최우선 타깃이기도 했던 쿠쿠렐라가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구단은 측면 수비의 한 축을 보강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즉각적으로 알바로 카레라스, 프란 가르시아, 페를랑 멘디의 입지를 뿌리째 흔드는 뇌관이 되었다. 한 포지션에만 네 명의 1군 선수가 몰려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벼랑 끝의 가르시아와 멘디

구단 수뇌부의 계획은 명확했다. 우선순위였던 쿠쿠렐라 영입을 마무리 지은 뒤, 잉여 자원을 매각해 스쿼드를 다이어트하고 투자금을 일부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르시아와 멘디가 정리 1순위로 도마 위에 올랐다.

가르시아의 상황은 그나마 계산이 선다. 유럽 타 구단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시장 가치도 약 1,500만 유로 선으로 형성되어 있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쏠쏠한 즉각적 수익을 창출하면서 포지션 경쟁의 과열을 식힐 수 있는 훌륭한 매각 카드다.

진짜 문제는 멘디다. 오는 11월에나 그라운드 복귀가 가능한 부상 상태라 이적 시장에서의 매력도가 뚝 떨어졌다. 게다가 시즌당 900만 유로(세전)에 달하는 막대한 연봉 패키지는 타 구단들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다. 제값을 받고 파는 일반적인 이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최악의 경우 과거 에덴 아자르의 사례처럼 계약을 상호 해지하여 주급 지출이라도 털어내는 극단적인 방안까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실정이다.

물론 변수는 남아있다. 첼시가 알바로 카레라스에게 강한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카레라스가 매력적인 오퍼를 받고 런던으로 향한다면, 마드리드 입장에서 굳이 무리해서 다른 풀백들을 쫓아내듯 처분할 이유는 줄어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쿠쿠렐라의 합류로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의 지형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구단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그를 라리가로 복귀시켰고, 앞으로의 전술도 그를 중심으로 개편될 수밖에 없다. 16강 직행 실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든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팀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잉여 자원들. 마드리드의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